헤어지고 세달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물었다.
혹시 다른 여자 생긴 거냐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지금 자기 코가 석자라고.
그 말이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헤어진 뒤 세 달 동안,
한의원에 가서 화병으로 가슴 사혈을 하고,
전문 심리상담을 두 달 받고,
결국 정신의학과까지 갔다.
말 그대로,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가장 나를 더 힘들게 만든 건, 사실 그 사람이었다.
내가 의지하려 하면 도망쳤고,
함께하려거나 기대려 하면 비난했고,
내 마음을 짓밟았다.
내 상처 위에, 다시 상처를 얹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어쩌면
자기만의 지옥을 겪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 앞에서,
"너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고 소리쳤던 걸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그의 옆에 있었다.
그가 취준생일 때, 아무것도 없을 때.
지금처럼 번듯하게 월급을 받고,
자격증도 따고, 사회의 구성원처럼 살아가기 전.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그를 벤츠처럼 대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처럼 봤고, 사랑했다.
그런데 그는 늘 자기 자신을 똥차처럼 말했다.
"나는 너랑 있으면 더 불행해질 것 같아."
“너도 나랑 함께하면 불행할거야.”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그럴 때마다 말했다.
아니야,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멋진 사람이야.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는 끝내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못했겠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결국 나까지 함께 깎아내리며 떠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가 했던 말에 이렇게 묻고 싶다.
"그때 너는 나를 만나기 전에도 충분히 비참한 상황이었잖아.
오히려 나를 만나고 취직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너는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잖아.
근데 왜 나는 너를 비참하게 만든 사람이 되었어?"
그는 나를 통해 열정을 얻고,
삶의 방향을 찾고,
나의 사랑으로 조금은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무너지려 하자,
내가 힘들어지자,
그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던졌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
"너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그건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 그림자를 나에게 전가했다.
나에게 그는 벤츠였다.
진심으로, 끝까지.
그런데 그는 자신을 똥차라고 믿는 걸 멈추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사랑으로 감싸 안아도 그건 믿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기를 믿지 못했기에
나도 믿지 못한 거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통해 성장했다고 믿는다.
나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과 조금은 화해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도구'처럼 썼기 때문이었다.
진짜 사랑이었다면,
내가 무너질 때 "이번엔 내가 너를 지킬 차례야"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미래가 안 그려진다"며,
나를 비판하고 떠났다.
그건 비참한 결말이 아니라,
비겁한 결론이었다.
그는 내가 해준 것만큼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했고,
내 진심을 짐으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쯤,
그렇게 '자양분' 삼았던 연애를 놓고,
또 다른 더 자극적이고, 더 가벼운 도파민을 좇는 사람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원한 건 책임이 아닌 자극이었고,
사랑이 아닌 위안이었으니까.
지금 나는, 나 자신을 다시 껴안고 있다.
내가 준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게 잘못된 방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벤츠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벤츠임을 알아봐 주는 사람과 함께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때 널 비참하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너 스스로였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너까지 사랑했었던 사람이었다고."
지금 이 문장을 되뇌이며,
나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이 감정의 깊이로,
더 단단한 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 진심은 절대 실패가 아니다.
그건 내가 얼마나 깊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지 보여준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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