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내 곁에 있을 때,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했다.
내가 있어서 자극이 되었고, 열정이 생기고, 변화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삶이 무너져가던 시절, 그는 나에게 의지했고, 나를 통해 회복을 말했고, 나라는 존재로부터 위로받았다.
나는 기꺼이 그의 곁이 되었다.
그의 무기력한 날에도 손을 잡아주었고, 조용히 무너지던 날들에 등불이 되어주었다.
그가 조금씩 일어서는 걸 보며 나도 행복했다. 이 사람이 나로 인해 더 나아진다면, 그게 사랑의 힘이라 믿었기에.
그 사람은,
내가 주는 진심과 정성 위에서 살아 있었다.
내 마음에 기대고,
내 위로에 힘을 얻고,
내 사랑으로 자기 삶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무너질 때,
그는 내 아픔을 짐이라 느꼈고,
내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며 등을 돌렸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어쩌면 ‘자극’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의 무력함을 견디기 위한 도구,
변화하고 싶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연료,
그리고 그 에너지가 다했을 땐
다른, 더 새롭고 짜릿한 감정을 줄 누군가를 향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꾸는 사람.
그의 머릿속에는
‘이 사람은 나에게 얼마나 도파민을 주는가’,
‘내 감정을 충족시켜주는가’라는 계산만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사랑을 줬던 사람인데,
그는 내가 만족시켜야 할 기대치로만 나를 바라봤다.
그런 연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지쳐갔고,
그는 점점 더 무심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큰 지지자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다.
회사에서는 힘든 일이 생기고,
홀로 외로운 타지생활 하며
매일 눈물을 삼키고 버티고 있었다.
옆에 유일했던 그에게 의지하려던 나를 보더니
내가 무너지자 그는 곧바로 말했다.
"너를 보면 미래가 안 그려져."
그리고 날 비판했고, 떠났다.
그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었는데,
정작 내가 무너질 땐 네가 나를 짓밟았구나.
그 말 하나하나가 억울했고,
내 진심이 무너지고, 내 존재가 부정당한 듯한 고통이 들이쳤다.
그는 분명 내 곁에 있을 땐
나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삶에 자극을 주었고,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정체된 그를 조금씩 앞으로 이끌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순간,
그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나를 ‘힘의 원천’으로만 썼다.
내 에너지와 따뜻함을 자양분 삼아
자기 삶을 회복하고 리셋했지만,
정작 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자
그는 나를 “부담”이라고 여겼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일방적 의존이었다.
정말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힘들어졌을 때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킬 차례야”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오히려 내 아픔을 외면했고,
그 외면을 "미래가 안 그려져서"라는 핑계로 포장해버렸다.
이제야 선명해졌다.
그는 나를 사람이 아닌 도구처럼 대했다.
사랑받기 위해, 위로받기 위해,
자기 존재를 긍정받기 위해.
그에게 나는 목적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소비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니다.
사랑은 함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
무너지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것.
감정이 깊어졌다고 도망가지 않는 것.
나는, 그런 사랑을 주었다.
나는 그의 아픔을 안아주었고,
그가 바닥에 있을 때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정작 내가 힘들어졌을 때,
그는 내 상처를 외면했고,
그 무게를 나에게 책임지게 했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버티고, 붙잡고, 회복하려 했던 진심의 사람이었다.
내가 한 사랑은,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도구’가 아닌,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상처 속에서도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진짜로 아껴줄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할 자격이 있다.
그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지만,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게 나의 강함이고,
그게 바로 나의 회복이다.
내 슬픔은 진짜였고,
내 사랑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 모든 시간 위에,
이제는 더 단단하고 따뜻한
나만의 세계가 세워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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